한사람재단의 시작에는 자립준비청년 출신의 활동가가 있었다. 재단이 2024년 4월 인가받은 직후 입사한 모유진 씨는 재단의 첫 직원이자 자립준비청년이었다. 홈페이지 제작부터 사업 기획, 디자인, 자립준비청년 발굴과 연결까지 그는 재단의 기초를 함께 세웠다.
“초창기에는 담당자 구분 없이 전반적인 일 을 다 했어요.”
재단과의 인연은 카페에서 시작됐다. 판교 대장동에서 1년간 작은 카페를 운영하던 그는 자립준비청년과 관계자들이 자연스럽게 모이는 공간을 만들고자 했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공간은 좁았고, 수익은 불안정했다. 카페 운영을 정리하던 시점, ‘선한 울타리’ 최상규 대표가 한사람재단을 소개해줬다. 오랜 기간 자립준비청년 멘토로 활동해 온 최 대표 역시 지금 역시 재단의 이사로 함께하고 있다.
그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기획 프로그램은 경제·금융 멘토링 프로그램 ‘플러스(PLUS)’다. 이 프로그램은 단계별로 구성돼 있다. ‘가치 플러스’는 돈에 대한 가치관을 정리하는 단계이고, ‘소비 플러스’는 소비 성향과 감정의 관계를 돌아보는 단계, ‘자산 플러스’는 안전하고 건강한 자산 형성을 배우는 단계이다. “저도 여러 경제 프로그램을 들어봤었는데 대개 딱딱하고 이론적이더라고요. 저희 프로그램은 돈을 왜 벌고, 어디에 쓸 때 마음이 불편한지, 어떤 소비가 나를 행복하게 하는지 들여다보는 과정으로 구성되었고, 단순한 금융 지식이 아니라 자기 이해에 가까운 프로그램이라 더 애정이 있었어요. 청년들에게 도움이 될 거라는 자신이 있었거든요.”
선대인 경제연구소와 협업해 진행된 이 프로그램은 청년들의 반응도 뜨거웠다. 만족도 조사에선 ‘현재 저에게 가장 도움이 되는 강의였다.’ ‘프로그램 담당자에게 보너스를 줘야 한다’는 평가가 나왔다. 이같은 평가에 대해 그는 “제가 자립준비청년 당사자이기에 청년들에게 어떤 프로그램이 필요하고 또 이 시기에 무엇을 만나면 인생이 조금 달라질 수 있는지 알고 있기 때문이었던 같다”고 설명했다.
그가 가장 보람을 느끼는 순간은, 자립준비청년 ‘당사자’였던 자신의 경험이 누군가에게 실제 도움이 된다고 느낄 때다. 조직과 청년 사이에서 생기는 거리감을 중간에서 풀어내며, 양쪽이 서로를 조금 더 이해하게 되는 순간 그는 이 역할이 자신에게 주어진 이유를 실감한다. “누군가는 쉽게 지나칠 수 있는 마음을 알아보고, 대신 설명해 줄 수 있을 때가 있어요.”
동시에 그는 자신이 한발 물러나도 재단과 청년의 관계가 계속 이어질 때 깊은 보람을 느낀다. 프로그램이 끝난 뒤에도 청년들이 재단과 연을 이어가고, 또 다른 연결로 나아가는 모습을 볼 때, 그는 “이제는 스스로 건너갈 수 있는 다리를 만들어두었구나”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이 모든 보람과 추억을 뒤로한 채, 이번 달을 끝으로 재단을 떠난다. “재단이 이제 7명이나 일하는 조직으로 성장했고, 시스템과 체계가 필요한 단계에 접어들었어요. 저는 체계보다는 창의에 가까운 사람이라서요(웃음). 이제는 글을 쓰고 음악을 만드는 등 창작에 조금 더 집중하려고 해요.”
사실 그의 본업은 ‘아티스트’다. 에세이집 ‘숨김없는 말들’과 동화 ‘상냥하고 싶어’ 등을 펴낸 작가로 한겨레신문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으며, 10개의 앨범을 세상에 내놓은 싱어송라이터이기도 하다. 그림 또한 전문 일러스트레이터 수준으로 그리는 이른바 ‘금손’이다. 이같은 다양한 분야에서의 활약과 성취가 인정돼 2022년 대한민국 인재상을 받기도 했다.
“지금 이 나이, 이 순간에만 오는 경험과 감정들을 기록하고 싶은데 시간이 많이 부족하다 보니 그냥 흘려보내야 할 때가 많았거든요. 그게 너무 아까워서 글로 음악으로 풀어내는 시간을 가지려고 해요.”
마지막으로 자립준비청년들에 대한 조언을 부탁했더니 그는 “나를 알리면 반드시 나를 찾는 사람이 있다”는 말을 전하면서 자신의 실제 경험을 귀띔했다. 스물네 살 때 노트북이 고장나면서 글쓰기도 그림도 작곡도 다 멈춰야 했던 그는 돈을 모아 노트북을 사려면 최소 1년은 기다려야 했다. 1년을 기다리는 대신 그는 ‘꿈 제안서’를 써서 삼성, LG 등 대기업뿐만 아니라 사회복지기관 등에 무작정 보냈다. 제안서에는 자신의 현재 상황과 앞으로의 계획 및 ‘노트북을 지원해주면 앞으로 창작활동을 통해 사회에 기여하겠다’는 비전도 담았다. 결국 한 복지관에서 연락이 왔고 그때 지원받은 아이패드를 아직도 잘 쓰고 있단다. 그래서 그는 후배들에게 말한다. 아르바이트로 돈을 버는 것도 중요하지만, 한 번쯤은 ‘제안해보는 훈련’을 해보라고.
그는 또 자립준비청년들에게 준비 없는 수혜에만 머무르지 말라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요즘에 자립준비청년을 위한 지원이 많아졌는데, 준비 없이 지원만 받다 보면 막상 지원이 끝났을 때 고립될 수 있어요. 지원이 주어지는 시기에 잘 활용하고 준비하면 일반 청년보다 더 유리한 지점에서 시작할 수 있습니다. 또 자립준비청년들은 대개 공감 능력이 뛰어나고, 누군가의 마음을 살필 줄 아는 성품이 있어요. 그 성품은 쉽게 사라지지 않거든요. 그것이 자립준비청년들이 가진 분명한 자산이고, 언젠가는 반드시 강점이 되는 날이 온다는 것도 잊지 않길 바랄게요.”
비록 그는 한사람재단을 떠나지만, 그가 만들어놓은 재단과 청년들 사이의 다리는 오래도록 사람과 사람을 잇는 통로로 남아 있을 것이다.
PS. 사람책
우리에겐 책 같은 한 사람이 있습니다.책을 읽는 이유는, 내가 아직 살아보지 못한 삶을 먼저 건너온 사람이 있기 때문입니다. 한사람재단과 함께해온 사람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삶으로 답해온 분들입니다. 이 책은 그들의 이야기와 시간, 선택과 흔들림, 그리고 다시 걸어온 순간들을 담고 있습니다. 언제든 꺼내어 읽을 수 있도록, 한 사람의 인생을 한 권의 기록으로 남깁니다. 월마다 한사람의 이야기를 차곡차곡 담아온 이 기록은, 결국 사람을 사람에게 건네는 한 권의 책이 될 것입니다.
사람책은 사람을 통해 길을 발견하는 이야기입니다.